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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도 정(情)들면
경상투데이 기자 / 2022년 0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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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규 수필가
사람들은 울타리 너머로 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삶에서 정만큼 소중한 것도 없을 것 같다. 타향일지라도 오래 살다 보면 정이 들게 되고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포근한 안식처로 바뀐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란 말도 그래서 생긴 말 같다.

　나의 청년기, 역마살이 끼었는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다 신라천년고도 경주에 자리 잡았다. 풍류객은 아니지만 찬란한 문화 유산이 살아 숨쉬고 있고 역사 속을 거닐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경주가 좋아 내 스스로 선택한 곳이다.

　그 속에서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내 인생의 덤이라 할 것이다. 공직생활을 통해 경주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됐고 경주역사와 고도의 매력에 깊이 빠지게 됐다. 경주에 정착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잘한 선택이었고 나 자신의 복이라 여기마 살아왔다. 이 모든 것은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좋은 이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향살이 하면 설움과 고생의 대명사처럼 여겨왔다. 사람들은 유행가로 그리움을 달래보기도 했고 향수병으로 설움이 북받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고향에서 살고 있는 사람보다 고향 밖에서 사는 사람들이 월등하게 많다. 타향살이니 객지니 하는 말들이 우리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갈 날이 멀지 않을 것같다.

　옛날에는 벼슬자리에서 물러나면 낙향해서 고향을 지키고 선산을 가꾸는 것이 사대부의 길이었다. 사대부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경우도 공직을 마치고나면 고향에 가서 지내기로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내 고향은 경주와 인접해있는 청도다. 과거에는 길이 험해 자동차로 가더라도 한 시간이면 당도한다. 고향과 타향을 나눠서 얘기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지근거리다.

　태어난 곳도, 출신학교도, 직장도 모두 경주인 자식들에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부모세대의 추억 정도로만 생각될 것이다. 수시로 고향을 들락거리다보니 타향이란 이미지가 사라진 듯하다.

　사람들이 이웃나라를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는데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기는 커녕 가족들의 소식조차 알 길이 없는 비극으로 애련의 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명절을 맞아 해마다 되풀이되는 민족 대이동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주는 신선한 나들이일 것이다.

　노년을 대비해서 고향집을 수리해 두었다. 그러나 정든 경주를 떠나 완전히 귀향할 생각은 없다. 어릴 적 추억도 좋지만 살아오면서 눈가는 곳마다 살붙이처럼 정이든 곳이 경주다. 무엇보다 3년 전부터 이사와 살고 있는 아파트 환경이 쾌적해서 좋다. 넓은 정원에는 아름드리 노송과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고 작은 연못도 만들어져 있다.

　시내와 다소 떨어져 있어 주거생활지로서는 최적이다. 실내에서 바라보는 정원풍경은 경치좋은 어느 정자에서 내려보는 것처럼 마음을 맑게 만든다. 솔솔 부는 바람에 단풍진 나뭇잎들이 한들거리고 어디서 왔는지 뭇 새들이 날아든다 청정한 나뭇잎들은 산소의 공급원이 돼준다. 비록 고향은 다르지만 고향사람처럼 정이 따뜻한 이웃들도 많다.

　우리는 한 조상의 후예이기도 하지만 어디로 가나 지역의 정서나 문화 역시 다를 바 없다. 때문에 이질감이나 거부감이 없는 것이 우리의 환경이다. 어디에 누구와도 쉽게 어울려 생활할 수 있고 정을 나눌 수 있는 민족이다.
 
　떠돌이 신세와 다를 바 없는 유목민이다. 환경이 달라 다민족사회를 이루고 있는 나라에서 우리와 같은 정서와 인정의 교감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도 죽을 때는 제가 살던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마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고 생활수준이 고루 향상되면서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란 말이 현실로 다가와 제2의 고향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웃과 더불어 정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고향을 만들어 가는 첩경 아닐까 싶다.
경상투데이 기자 / 2022년 0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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